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감상문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어릴 적부터 교과서에도 나오고 시험에도 나왔던 소설.

 

하지만 지루해보이는 이름 덕분에 나의 독서리스트에 결코 들어갈 일이 없었던 소설.

 

몇년 전 아이유가 '제제'란 노래를 작사하며 대중들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나에게 재조명(?) 받았던 소설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브라질 소설가 바스콘셀루스에 의해 쓰여진 '자전적' 소설이다. 다시 말해 실화 바탕 소설이다.

 

먼저 최종 감상평을 말하자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역시나 불후의 작품은 그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어린왕자와는 아주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는 주인공 제제의 상상력 속의 세상이 어린왕자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당 소설은 1인칭 제제의 시험인데, 브라질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쌍파울루 아님) 근처에 살고 있는 5살의 아이가 바로 제제다. 배움의 욕구가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지만 세상 심한 장난 또한 사랑(?)하는 아이다. 그의 가족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엄마, 세명의 누나, 형, 동생, 그리고 아버지가 등장한다. 모두가 실재했던 존재이며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의 프롤로그에 20살에 죽은 동생 루이스와 24살에 죽음을 선택한 글로리아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생각해보면 애절하고 애처로운 일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의 근간은 상상력과 창의성이다. 제제의 상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인데, 그러한 상상력 속에서 밍기뉴라는 오렌지나무를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로 만든다. 사실 제목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기 때문에 오렌지나무 밍기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소설의 보조 역할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밍기뉴는 자주 등장하지도 않지만 심지어 그의 우상이자 친구이자 아버지였던 뽀르뚜가가 죽으며 밍기뉴 또한 제제의 마음속에서 죽어버리고 만다. 

 

이 책이 명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었일까? 제제의 상상력과 가족의 아동학대, 그리고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의 1900년도 중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삶, 실직 등이 잘 버무려져있기 때문일까? 이상하게 이 책 만큼은 나의 마음을 강하게 당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만, 프랑스와 한국 외에는 사실 엄청나게 잘나가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하나의 최고의 책.

 

과거 아이유가 제제에 대한 작사 때문에 욕먹었던 상황에서 나는 악플러들의 마녀사냥이나 호들갑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 책을 보고 난 후 제제 곡의 가사를 보니 아동학대의 피해자이자 순수한 영혼의 제제를, 심지어 실존 인물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공인은 '언어'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밌는 사실. '라임오렌지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짧은 인터넷 탐험으로는 번역가의 오역이다. (번역가가 최초 번역 당시 심지어 포르투갈어를 잘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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